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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산 ‘상생의 길’을 걷다
작성일 2012-05-17 조회수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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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117개 마을 아우르는 800리길
25일 전 구간 개통 … 이음단 14명, 보름동안 274㎞ 걸으며 최종 점검
 
하늘에서 가까운 동네길. 동네에서 동네로 길 잇기 작업을 시작한지 4년 만에 활짝 열렸다. 산림청은 2008년 5월 전북 남원 매동마을∼경남 함양 금계마을(19.3km)구간을 시작으로 '지리산둘레길'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5월 25일, 봄이 가는 길목에 둘레길을 열었다. 영호남을 아우르는 지리산 둘레길은 경남 함양(23㎞)과 산청(60㎞), 하동(68㎞)을 연결해 전북 남원(46km), 전남 구례(77㎞) 등 274㎞ 3개 도, 5개 시·군, 117개 마을에 걸쳐있다. 전 구간을 완주하는 이음단을 따라 내일신문 지역 리포터들이 지리산 800리 길을 둘러본다.

 
 
영호남 117개 마을을 잇는 지리산둘레길 전 구간 개통을 앞두고 지리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최종점검에 나섰다. 지난 9일 오전 10시, 전국에서 모인 '이음단' 14명이 출범식을 마치고 길을 나섰다. 이음단은 보름간 지리산 숲길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전라북도 남원시와 구례군의 경계인 밤재에서 출발한 이음단은 한마음·푸리미 두 조로 나뉘어 서로 반대방향으로 길을 재촉했다. 이들은 둘레길 274㎞를 완주한 후 원점으로 돌아온다.
 
산자락마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꽃빛에 홀려 잠시 발길을 멈춘다. 밤재 주인을 자처하는 검은등뻐꾸기가 소리로 길 안내를 한다. 시인 이원규는 검은등뻐꾸기가 우는 소리가 '홀딱벗-고, 홀딱벗-고!'라고 들린다며 '욕망을 비웃는 반성의 숲길'이라 표현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길 = 지리산길은 좁다. 길이 좁아야 오고가는 사람들이 마주치고 옷깃을 스치며 눈 인사라도 한다. 도심처럼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불편함이 없도록 조금 손봤을 뿐이다.
 
남원과 구례를 가르는 밤재는 19번 국도로 사용됐지만 터널이 뚫리면서 옛길이 됐다. 밤재에서 운봉 방향으로 길을 잡은 '푸르미 이음단'은 첫 마을인 외평마을(주천)을 지났다. 경치가 수려한 외평마을은 고려시대부터 숙성치(숙성재)를 넘은 길손이 말을 갈아타고 쉬어가던 곳으로 '원터거리'라 불렸다.
 
이어 안솔치(내송마을)를 지나다 개미정지(쉼터)에서 땀을 식히며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이 지역 출신 조경남 의병장군 생각에 잠긴다. 마을 사람들은 정유재란 당시 숙성치를 넘어 남원성을 향하던 왜군을 향해 조 장군이 활시위를 당겼던 곳이라고 전해줬다.
 
회덕마을과 노치마을을 지났다. 회덕마을은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기'라 불렀다. 평야보다 산이 많아 억새로 지붕을 만든 집을 볼 수 있다.
 
운봉에서 인월로 가는 길에 람천이 시원스레 흐르며 발길을 붙든다. 지리산에서 흐르는 물은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람천은 운봉을 지나 인월 용유담, 경호강과 남강으로 이어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강물로 수달과 철새 등 다양한 동식물 서식처가 되고 있다.
 
◆길, 걷는 이의 가슴을 흔들다 = 구례 하동쪽으로 길을 잡은 '한마음 이음단'도 첫날 23㎞를 걸었다. 
 
서시천과 섬진강의 합수지점을 지나 예전에 미루나무와 모래가 많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다는 용호정 부근의 옛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용두마을을 지나 운조루 대청마루에 앉아 땀을 식혔다.
 
해가 지자 산골마을은 쌀쌀하다. 가로등을 대신한 별빛이 가탄마을 매실나무 밭 위로 쏟아진다. 벌써 매화꽃이 지고 탐스런 매실이 주렁주렁 달렸다.
 
이른 봄에 왔다면 흐드러진 매화꽃에 잠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숙소인 마을회관에서 진동하는 소염진통제 냄새는 고된 행군을 말해주었다. 
 
다음날엔 쌍계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탄마을에서 쌍계사를 가는 길에 곰취며 고사리가 지천에 널려있다. 고사리 군락지엔 '고사리 절대 손대지 마십시오'라는 경고문이 보였다. 인근 주민 말로는 예전엔 등산객 때문에 매실이며 고사리를 제대로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둘레길을 걸을 때면 오롯이 길만 탐내야 한단다. 
 
폭죽처럼 피어있는 아카시아꽃을 한줌 따서 입에 넣고싶지만 향기로 만족한다. 막 꽃이 피기 시작한 하얀 찔레꽃의 어린 순을 살짝 만져보는 여유도 누린다. 오월의 지리산 품은 여유롭고 넉넉했다. '계절성 우울증'을 앓는 이에게 추천하고픈 길이다. 
 
숲길을 지나 대비마을에 들어서니 녹차 밭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낙들이 어린 녹차 잎을 따는 전경을 손가락 프레임에 가두니 멋진 풍경화로 변신한다. 차밭 사이를 걷다 보면 곳곳에 다원이 눈에 띈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듯 덖는 방법에 따라 다원마다 차 맛이 다르다. 쉼표를 찍듯 차 한 잔 마시고 가는 것도 좋겠다. 


 
<9일 지리산둘레길 이음단이 밤재-구례 구간을 걷고 있다. 이들은 23일까지 전남·북, 경남의 5개 시·군(구례 남원 하동 함양 산청) 20개 읍·면의 117개 마을을 거치며 지리산둘레길 247㎞를 걷는다. 왼쪽 사진은 둘레꾼들의 발길을 이끌어주는 둘레길 안내표지판이다. 사진 윤덕중 리포터>
 
드라마 '식객' 촬영지인 차나무 첫 재배지도 볼 수 있다. 쌍계사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30분. 절간에 잠시 들려 삼배를 하고 원부춘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이음단에 참여한 유희종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강원지부 운영팀장은 "지리산 둘레길은 민박을 하며 쉬엄쉬엄 걸어야만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다"며 "길을 걷다 만나는 마을 주민들과 살갑게 인사도 나누고 선조들의 삶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해가 서산을 넘었다. 일정 4일째, 이음단도 어둠이 감싸는 깊은 지리산 품에 안겼다.


< 출처 : 내일신문 / 2012.05.16 >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661942&sid=E&ti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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