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진화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아파트 브랜드가 탄생하더니 이제 그럴싸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파트 축에도 못 낄 것 같다. 브랜드와 함께 진화해간 아파트는 (광고를 통해)“그 아파트에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치를 높여가는 것”이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가치를 높여가는 만큼 분양가도 올려놨다. 물론 조금은 더 편리하게, 인간의 허영심을 약간은 만족시켜 주면서...
그렇다. 아파트는 진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아파트다.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우리에게는 급격히 늘어간 게 있는데 그것이 아파트다. 그래서 아파트는 도시화 과정에서 무방비로 ‘해체된 공동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아파트는 여느 아파트와는 다르게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누가 아파트를 해체된 공동체와 등치시키냐고 따지듯 서로 어우러져 놀기도 하고, 아파트 이곳저곳을 주민들이 손수 가꾸기도 하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 특별히 ‘굴화두레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인 울산 무거동에 위치한 굴화주공 1단지 아파트가 그 주인공이다.
자발성, 헌신성, 책임성, 전문성, 민주성으로 투명하게 자치관리하는 두레마을
굴화두레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치관리’다.
두레마을은 헌신적이고, 원칙을 고수하는 입주자대표회의를 중심으로 입주민과의 지속적인 의사소통과 이를 외화시켜낼 수 있는 공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성장하여 왔다. 두레마을의 특징은 자발성, 헌신성, 책임성, 전문성, 민주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두레마을은 투명성 확보와 이권으로 인한 분쟁 등을 예방하기 위하여 의결에 관한 사항을 입주자대표회의로 집중하고, 분리수거 등 모든 수입을 관리주체로 일원화하여 갈등과 오해의 소지를 줄여왔다. 또, 입주자대표회의를 비롯하여 다양한 자생단체를 구성원으로 하는 단체회의를 구성하여 토론과 협의의 자리를 만들고, 대표회의에서 각 단체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하여 재정 및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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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교양사업으로 '입주민자치학교', '법률강좌', '학교운영위원회 강좌' 등을 열고 있다.
<사진 굴화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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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마을의 의사수렴구조]
(1) 입주자대표회의
두레마을의 관리에 관한 의결기구로 투표 등으로 선출된 동별 대표자로 구성된다. 단체회의, 관리사무소 등으로부터 제안된 사항에 대한 의결 및 각종 행사를 주최한다.
(2) 단체회의
입주자대표회의를 비롯한, 통.반장, 여성회 등의 단지 내 자생단체로 구성된 연석회의. 단지 내 각종 현안에 대한 협의, 토론이 이루어진다. 단체회의를 통하여 협의, 조정된 사안에 대해 ‘주민자치의 날’에 각 세대 입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전달하게 된다. 그리고 주민자치의 날에 제안된 사안을 다시 공론화하고 토론한다.
(3) 주민자치의 날(반상회)
각 통로별로 주민자치의 날 회합을 한다. 여기서는 단지 내 각종 현안과 행사를 설명하고 이에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 주민주치의 날을 통해 입주민 서로간의 불편사항이나 두레마을의 숙원사업 등이 취합되고 조정된다.
(4) 관리사무소
관리에 관한 각종 업무를 집행을 총괄한다. 입찰, 유지보수, 입주민 생활지원, 민원해결, 각종 행사를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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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엔 벚꽃축제, 10월엔 어린이 그림전
굴화두레마을에서는 벚꽃이 피는 4월이면 벚꽃축제를 연다. 관광객을 불러들여 마을 소득을 올리기 위한 축제가 아니라, 아파트에 사는 온 가족이 함께 나와 즐기는 그야말로 마을 잔치이다. 이제 4월이니 일곱번째 축제 소식이 날아들 것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어린이 그림전도 연다. 물론 아파트 주민으로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참가한다. 출품작으로 조촐한 전시회를 열면 온 가족이 나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밖에도 두레마을에서는 많은 축제와 행사가 열린다. 각종 축제와 행사는 기획, 준비부터 행사 개최와 직접 즐기는 모든 과정에 입주민들이 함께 한다. 그럼으로써 마을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진다.
처음에는 각종 외부공연 등으로 채워진 문화행사를 치루어 보았다. 그러나 깔끔한 공연행사보다 투박하지만 함께 준비하고 집체놀이를 즐기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 마을잔치가 되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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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 벚꽃 축제, 어린이 그림전, 경로행사, 연말 불우이웃돕기 팥죽 판매행사, 단지 내 불우이웃 돕기 모금, 자원봉사자를 통한 어린이 강좌 개설, 농수산물 직판, 결연사업(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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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 사진 굴화두레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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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축제, 사진 굴화두레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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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직접 꾸민 정겨운 마을 풍경
황토집으로 된 경비실, 연못, 쉼터넝쿨, 담장화단, 소생물 생태계... 두레마을은 한바퀴만 둘러보면 뭔가 색다른 점을 느낄 수 있다. 10년된 아파트인데, 주차공간보다 아이들이 뛰놀고, 자연이 숨쉬는 공간이 더 많다. 마을행사와 더불어 중점을 두고 진행하는 친환경녹화사업 결과이다.
두레마을의 조경시설은 대부분이 입주민과 관리사무소가 자력으로 꾸미고 가꾸어온 것들이다. 그래서 두레마을 주민들은 남달리 화단과 연못 같은 것들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손으로 일군 마을이기에, 우리식으로 꾸민 마을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고 정겨운 마을의 풍경이 되었다.
친환경 녹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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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실 옹기․흙벽돌․넝쿨, 포도 넝쿨터널, 연못, 나무이식(공사장), 조경석 설치, 벚나무 식재(벚꽃축제), 야생화 식재, 장승설치, 개나리 맥문동 식재, 담장화단 조성, 중앙도로 눈썹화단 조성, 전지목 재활용, 소생물생태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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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스스로 아파트의 가치를 높여간다
굴화두레마을은 입주자대표회의를 정점으로 관리사무소와 단체회의가 함께 공동체문화운동과 전통문화의 계승, 숲으로 대표되는 친환경 녹색주거공간의 조성이라는 큰 틀의 관리 원칙과 방향을 지켜가고 있다.
입주민 간의 화합과 친밀도를 높여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도록 마을의 현안을 대표회의에서부터 개별세대 모두가 논의하고 고민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논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이웃과 부대낄 수 있는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두레마을의 어른들은 삭막하고 분주한 도시생활 속에서 쾌적하고 푸르른 주거공간을 만들고 어린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두레마을 사람들은 보잘 것없다고 겸손해하지만, 주민 스스로 살고 있는 공간을 가꾸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것이 그곳의 가치와 품격을 얼마나 높여주는지 훌륭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두레마을이 걸어온 갈등과 좌절 그리고, 실험과 도전이 안겨준 성취감은 두레마을 주민 모두의 성과이자 가치있는 아파트에 살고자하는 우리들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