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남산이 있다면, 대구에는 앞산이 있다. 앞산이란 명칭에 대해 외지인들은 의아해한다. ‘앞산’이 있으면 ‘뒷산’은 어디 있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대덕산이라는 이름을 두고도 대구 시민들은 굳이 앞산이라고 부른다. 도심에서 4.5km 이내에 위치해 접근이 쉬워 언제든 찾아갈 수 있어 그렇게 부른다. 앞산은 예부터 풍부한 녹지와 시원한 공기, 맑은 물이 어우러져 대구 시민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도 통한다. 한편, 이곳을 빙 돌아드는 앞산순환도로에는 명물 거리가 있다. 앞산 맛둘레길이다.

선지국밥, 풍성메밀 등 대구시의 대표적 향토 음식점은 물론,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본식 라면집, 스페인 음식점 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포진해 있다.
대구 남구청이 이곳을 먹거리타운 조성 공간으로 정하고, 주변 환경을 최대한 고려하여 저탄소 녹색성장 웰빙거리로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2010년 도시대상 국토해양부 장관상 수상에 이어, 기초지자체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13회 대한민국디자인 대상’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차로폭을 축소해 보행 공간을 확보하는 등 사람 중심의 거리환경을 조성하고, 주민들이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이 높이 인정받았다. 또한 기존에 조성중인 주변 사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준 점도 높은 점수를 얻은 이유중 하나였다. 현재 대구의 맛둘레길은 대구의 가로수길로 통하며 대구시민들의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을 얻기까지 본 사업의 필요성을 이해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모든 성장 과정에는 성장통이 수반되는 법. 남구청은 일련의 풍파를 이겨내고 앞산 맛둘레길을 조성할 수 있었던 데는 남다른 노력이 뒤따랐다.
100억원 대형 프로젝트 앞산 맛둘레길
앞산 맛둘레길 조성 사업은 2010 국토해양부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에 선정되어 추진되기 시작했다. 2014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100억원대의 사업비가 투자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앞산 빨래터 공원에서 현충삼거리에 이르는 1.5km 구간으로, 한때는 사람들의 왕래도 많고 부촌으로 손꼽히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앞산순환도로가 개통된 후 사정이 달라졌다. 자동차 통행량은 늘어나는 반면, 도로 아래쪽을 지나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앞산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상권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절반가량의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인적이 드물어지다보니 우범화 우려도 높아졌다. 지역 상권을 살리고, 안전한 보행환경을 조성하는 게 시급해졌다.
주거지 형태였던 곳을 공업 지역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구는 앞산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면서 기존의 시가지를 자생적으로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휴식과 함께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탄생시키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예산 확보 없이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일. 임병헌 대구 남구청장은 거액의 예산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중앙부처 공모사업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국토해양부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공모에 도전했다. 기존의 관 주도적 사업 추진 방식을 탈피하여 시민, 사회단체, 기업 등이 참여하는 민간 주도적 참여를 적극 유도하겠다는 점을 피력했다. 그 결과 100억원이란 사업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남구는 예산이 확보되자마자 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이 사업 속으로 끌어들일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구청의 특별부서, 도시경관과
사업 초기, 김진걸 도시건설국장은 경관 디자인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미관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구청 내 디자인 전문 조직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구청 내 직원들은 의아했다. “남구에 무슨 디자인 조직이냐?”, “얼마나 실효성을 거두겠느냐? 인력 낭비다” 등의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분위기 탓에 김 국장은 홀로 일을 추진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임 구청장이 김 국장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김 국장의 다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믿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디자인 전문 조직, 도시경관과가 신설되었다.
도시경관과는 경관계획, 도시계획, 공원녹지, 광고물 등 각 분야별로 세분화된 전담부서로 본 사업의 총괄을 맡았다. 이곳을 통해 사업이 집중화·전문화되자 구청 내 직원들도 도시경관과의 필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 도시경관과 운영 체계 및 조직 구성에 대해 물어올 정도다. 도시경관과에 의해 가장 먼저 개선된 것이 간판이었다. 간판 수와 크기를 줄여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이뤘다. 주민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차로폭은 축소하고 인도폭을 넓혔다. 전봇대와 전선은 땅속으로 넣어 거리를 깔끔하게 만들었다. 우범화 가능성이 있는 곳은 LED 조명을 설치하여 보행의 안전성을 확보했다.
한편, 김 국장은 도시경관과 신설과 함께 주민들의 도시대학 참여의 필요성도 주장하기 시작했다. 선진지 견학과 전문화된 교육으로 주민 스스로가 주민 동참의 중요성을 깨우쳐야 한다는 게 김국장의 생각이었다. 김 국장은 도시경관과 담당자들에게도 주민과 함께 도시대학에 참여할 것을 당부했다.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한데 어우러져 도시대학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했던가. 도시대학 참여 후 무관심과 불만으로 일관해 오던 주민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교육서 돌아오자마자 김영수 상가번영회 회장을 중심으로 ‘좋은이웃주민협의체’가 만들어졌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 주민들이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와 함께 공무원과 주민들이 함께 교육을 받는 과정속에서 서로 간에 신뢰가 쌓여, 사업을 함께 구상하고 고민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8주간의 교육만으로 본 사업을 다 이해하기란 역시 무리였다. 얕은 지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주민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주민 앞에 나선 건, 역시 김 국장이었다. 다섯 번이고 열 번이고 찾아가 이해하고 납득할 때까지 설명했다. 물론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가버리는 주민들도 있었다. 그러면 다시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김 국장의 이런 적극성 때문에 주민들도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풀고, 본 사업을 이해하려 애쓰기 시작했다.
특명! 주인의식을 고취시켜라!
공사가 시작되자 음식점 입장에서는 공사로 인한 먼지나 소음이 탐탁치 않았다. 또한 자신들이 원치 않는 곳에 도로 시설물들이 설치되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매일같이 구청으로 민원신고가 들어왔다. 이러한 갈등을 풀어주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된 것이 좋은이웃협의체였다. 같은 주민의 입장에서 주민들을 설득하니 한결 수월했다.
이에 남구청은 주민들의 완전한 이웃이 되어 주민들과 한데 어우려져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곳이 ‘남구 도시만들기지원센터(YMCA 위탁/사무국장 1명, 간사 2명, 연구원 2명)’였다. 이곳을 통해 주민들의 의견이 수렴되고, 주민과 행정 사이의 의견차가 조율되었다. 아울러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도시대학을 통한 지역주민 역량강화도 해당 프로그램사업 중 하나였다. 이외 앞산 자락길 걷기 대회, 외국인과 함께하는 한국음식문화체험 등의 체험프로그램도 운영되었다.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아주면 하루를 살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일생을 살 수 있다’는 탈무드의 지혜처럼, 주민 스스로가 지속적, 자발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 위함이었다.
한편 남구청은 주민들의 주인 의식 고취를 위한 또 다른 방안으로, 거리명 공모를 개최했다. 주민들이 내놓은 거리명 중 최종 5개를 선발하여 주민 투표에 부쳤다. 지역주민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앞산 먹거리타운’에서 지금의 ‘앞산 맛둘레길’이란 명칭이 얻어졌다.
이제 주민들이 알아서 척척
지난 5월 앞산 맛둘레길 전 구간에서 ‘제1회 앞산 맛둘레길 오감축제(2012년 5월 4일~5월 6일)’가 개최됐다. 앞산 맛둘레길 번영회가 주최하고 남구도시만들기지원센터가 주관한 이 축제는 앞산 맛둘레길의 매력을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축제 기간 동안 다양한 공연과 프로그램들이 펼쳐졌다. 앞산 맛둘레길 업소 30개소가 참여하는 맛 장터와 시식코너도 운영되었다. 이 모든 것이 주민들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앞산 맛둘레길의 가로환경이 개선되고 친환경 공원으로 탈바꿈하자 지역발전에 주민들 역시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번영회는 대구 시민과 관광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음식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한달에 한두 번 이상 타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새로운 소스 개발과 신메뉴 개발, 경영 방식 등을 배우기 위해 맛집을 탐방하는 것이다. 답사 이후에는 번영회 회의를 열어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개선점을 찾기도 한다.
현재 앞산 맛둘레길 번영회는 블로그 식객단 이벤트도 추진중에 있다. 무작위로 선발된 블로그 식객단이 음식점을 방문하여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는 것이다. 무엇이 맛있고 맛없는지, 서비스에는 문제가 없는지... 지속적으로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음식점은 일단 맛과 서비스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국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앞산 맛둘레길 음식점의 소득은 평균 21.9%까지 증가하고 있다.

앞산 맛둘레길에서 먹고, 보고, 마시며 즐기자
매일 아침 6시면 임 구청장은 앞산 맛둘레길을 찬찬히 걸어본다. 그리고 꼼꼼히 살펴본다. 거액의 사업비가 투자되는 만큼 허투루 예산이 낭비되는 곳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그의 평소 행정 철학이 예산확보는 무조건 YES지만, 예산 낭비는 절대 NO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연속 청소행정 종합평가에서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된 것도 다 모두 이러한 행정 철학 덕이다. 본 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될 경우, 1억이란 시상금이 나온다. 주민들의 편의 시설이나 요구사항 등을 더 들어줄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다. 때문에 임 구청장 스스로가 매일 아침 지역을 돌며 거리 청소 상태를 확인하고 당부한다. 이렇게 부지런하고 꼼꼼한 청장이 있다보니 앞산 맛둘레길 역시, 최소의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편, 임 구청장은 앞산 맛둘레길을 ‘느리게 걷고 머물고 싶은 거리’로 만드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그래서 거리 곳곳에 자연학습 체험장과 친환경 미니공원, 먹거리 타운 등의 조성이 한창이다. 빨래터 공원에 위치한 낡은 우물터는 인근에 무당골이 있었다는 점을 착안해, 이 우물을 마시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이색공간으로도 꾸밀 예정이다. ‘사랑의 칠판’도 설치할 계획이다. 연인들이 사랑의 맹세를 하는 새로운 명소로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이로써 여가와 문화, 체험과 교육 그리고 낭만이 한 공간에 모두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앞산 맛둘레길 환경이 변화하면서 주변 인근 상권도 활력을 얻고 있다. 또한 거리 주변의 성업은 고용창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29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런 가시적인 성과로 현재 남구청은 앞산 맛둘레길을 중심으로 카페 거리, 안지랑 곱창골목을 연계한 앞산 투어 프로그램도 추진중이다. 앞산 맛둘레길에서 아침을 먹고, 고산골과 큰골 등에서 자연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에는 카페 거리에서 특색있는 메뉴와 함께 향기로운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저녁에는 젊음의 거리 곱창골목에서 대구의 별미인 곱창에 소주 한잔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거리는 생명과 같다. 새로 태어나 성장했다가 쇠퇴해 사라지기도 한다. 또 어떤 곳은 쇠퇴했다가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지금 앞산 맛둘레길은 주민 스스로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 덕분에 쇠퇴하기 시작했던 앞산 지역 상권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