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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발전우수사례
지역발전관련 우수사례에 대한 소개입니다.
제목 산업도시 울산이 최고 박물관을 만난 것은 필연
작성일 2012-10-26 조회수 686
첨부파일 2012지역발전우수사례_울산광역시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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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신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중략)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중략) 이 공업도시건설이야말로 혁명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웅도이며 기 성패는 민족 빈부의 판가름이 될 것이니 온국민은 새로운 각성과 분발 그리고 협동으로 세기적 과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 분기노력해 줄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1962년 6월에 세워진 울산 공업탑에 새겨진 문구이다.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동해를 울리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도록 산업발전을 이룩해 나가자는 것이 요지다. 문구 그대로 울산에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역이 된 기업들이 연이어 들어섰고 힘차게 공장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산업역군들이 몰려들었다. 그로부터 50년 후, 울산은 대한민국 최고 산업도시라는 명성과 함께 개인소득, 지역내총생산, 지역내총소득에서 모두 전국 1위를 기록하는 자타공인 부자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하늘과 바다마저 개의치 않고 총력을 다한 산업화의 폐해는 고스란히 울산의 멍에가 되고 말았다. 태화강은 수질오염의 대명사가 되어갔고,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악취에 코를 막아야 했으며, 급기야 폐암사망율 1위 도시라는 불명예까지 얹어졌다. 하지만 울산에 또 한번 놀라게 되는 이유는 이 모든 멍에를 도시의 또다른 성장동력으로 바꿔버렸다는 점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울산은 에코폴리스를 표방하며 적극적인 생태보전 및 생태복원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발전의 주역이었던 대기업에서도 환경오염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아 대공원을 만들어 시에 기부하였다. 현재 태화강은 사라졌던 연어와 숭어가 돌아와 뛰어 놀고 있으며, 세계적인 수영대회나 조정경기가 열릴 만큼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고 있다. 거리에서도 산업도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신선한 공기를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울산은 공장의 검은 연기가 아닌 생태도시의 건강한 향취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산업화의 선봉장에서 생태도시로 거듭난 울산시가 이번에는 ‘문화도시’로의 도약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근원지는 다름아닌 ‘울산박물관’이다.

 

박물관 하나 없는 부자도시?

 

울산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만족하는 정책은 단연 소득과 교통이었다. 반면 가장 불만인 것은 문화정책이었다. 아니 이렇게 잘 사는 도시에서 문화정책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다니! 언뜻 보면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문화계에서조차 울산의 문화빈곤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을 정도다. 한 예로 서울에서 10년간 공연됐던 브로드웨이 뮤지컬 ‘맘마미아’의 울산 첫 공연에 ‘맘마미아, 드디어 울산에 상륙하다!’는 카피가 등장했다. ‘드디어’라는 단어는 울산이 얼마나 문화적 혜택에서 변방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앞장서서 산업화에 매진하는 동안 환경에 대한 각성이나 문화 향유에 대한 부분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만족을 쌓아갈수록 시민들의 문화적 갈급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터. 문화적 갈급을 해결해 달라는 요구는 자연스럽게 박물관 건립이라는 하나의 응축된 목소리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소중한 울산의 문화유산인 7만여 점의 유물이 다른 지역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었다. 5천년의 긴 세월을 품고 있음에도 ‘박물관도 하나 없어’ 스스로 보관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산업화의 심장역할을 담당했음에도 그 불굴의 기록들을 울산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창피한 일이었다. ‘박물관 하나 없는 부자도시’라는 오명은 점차 울산시가 자존심을 걸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어 갔다. 

 

건물만 짓고 끝나는 BTL사업? 우리는 다르다!

 

어느새 시민의 숙원사업이 된 박물관 건립에 본격적인 불을 붙인 것은 박맹우 울산광역시장이었다. 3선인 박맹우 시장은 2002년 후보 시절 공약사업으로 박물관 건립을 내걸었다. 2003년에는 사업계획을 수립한 후 사업비 확보가 어려워 사업추진이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초기 투자비용이 적은 임대형민자사업(BTL)으로 변경하면서 드디어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울산박물관 BTL사업은 사업시행자(SPC)가 (주)울산박물관을 중심으로 재무 투자자, 건설사, 시설물 운영회사를 구성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울산광역시에서는 준공 후 20년간 사업시행자에게 정부지급금(임대료, 운영비)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박물관으로서는 전국 최초의 BTL사업이 된 울산박물관 건립이 타 지역과 차별화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박물관추진단의 구성(14명)이다. 울산시는 내실있는 박물관 운영을 위해 처음부터 추진단에 힘을 실어주었다. 즉, 공사 단계에서부터 유물 수집, 보관, 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준비하여 체계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추진단 구성의 화룡점정은 서울역사박물관 김우림 관장을 추진단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김우림 관장은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에 빛나는 베테랑 박물관인이다. 그는 박물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체계적이면서도 박력있게 일을 처리해 나갔다.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박물관의 명칭을 확정짓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시립박물관이 특정 시대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역사박물관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울산박물관은 선사시대 유적부터 산업화 시대까지 전 시대를 포괄하면서 구성되기 때문에 ‘울산(광역시)역사박물관’ 보다는 ‘울산박물관’으로 가는 것이 더 정체성에 맞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MI(Museum Identification) 작업도 이어졌다. 울산의 로고컬러인 청색과 역사컬러인 고동색을 매치해 디자인된 박물관 로고에는 위용넘치는 건축물의 특색까지 멋지게 드러나 있다. MI는 안내판, 명찰, 멤버십카드, 봉투 등 박물관 내에서 사용하는 모든 기자재에 사용되고 있다. 거기에 울산박물관 산하의 암각화박물관과 대곡박물관에도 같은 색상과 로고를 사용케 하여 일체감을 나타내주었다. MI작업은 일시적인 홍보성 액션이 아닌 박물관의 정체성을 담보하며 미래까지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작업임을 김우림 관장은 간파하고 있었다.

2009년 김우림 관장이 추진단장으로 올 당시에는 아직 건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고 준비되어 있던 전시실의 구성은 그가 생각하는 역동적인 전시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래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박물관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직원공간을 축소하고 기획전시실을 한 개 더 구축했다. 전시실에는 디오라마 기법은 최대한 없애고 좀 더 실재적인 전시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발품을 팔며 이 지역 모든 박물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동시에 흩어져 있던 울산지역 유물들의 이관작업도 서둘렀다. 그의 머릿속에는 “시민이 만드는 박물관, 울산 기업이 참여하는 박물관, 시민에게 사랑받는 박물관”이라는 목표가 이미 설정되어 있었다.

 

시민 기증운동과 산업사관의 탄생 

 

난관은 조선시대 이후 근현대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였다. 구입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민 기증운동’이다. 놀라운 것은 기증운동을 펼치자마자 엄청난 유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울산 시민들의 박물관에 대한 갈증을 대변하듯 기증운동은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심지어 개관 일주일 전까지 기증 유물이 들어왔을 정도다. 개관까지 무려 1,932점을 기증받았다. 그 결과 전시품목 중 80~90%가 기증유물로 채워졌다. 시민들은 대부분 울산을 위해, 울산박물관을 위해 그리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유물을 내놓았다. 울산박물관은 이들을 위해 기증자 예우규정으로 화답했다. (한편, 울산박물관은 개관 1주년을 맞은 지난 6월 기증유물 특별전을 열었다. 전시된 기증유물은 유물기증운동을 벌였던 2006년부터 주민들이 기증한 것으로 170여명의 2,600여점이다. 주요 전시유물로는 ‘사옹(司饔)’이 새겨진 청자대접, 학성 이천기 일가묘에서 출토된 복식(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37호), 머구리 장비, 마을 공동 혼례복, 학성이씨 현령공파 절송공묘에서 출토된 유물(시 문화재자료 제11호), 서덕출 선생 자료, 호패, 영사기와 스피커 등이다.)

기증운동은 시민차원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다. 울산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산업사관이 꾸며진 곳이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심장부 역할을 담당한 많은 기업체들이 울산과 함께 성장했다. 그 역사적 발자취를 제대로 새겨볼 수 있는 곳으로 울산만큼 적당한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사관 구성은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자료와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고 어디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울산에서만 가능한 특별전시관인 산업사관을 아카이브 위주로 밋밋하게 꾸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발로 뛰자!” 김우림 관장과 학예사들은 울산 소재 개별기업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기업체 담당자를 직접 만나 박물관의 전시공간을 보여주며 산업사관 건립 취지를 설명하고 울산의 대표 산업에 대해서 박물관과 함께 전시공간을 꾸며보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기업체들이 순순히 따라줄 리 만무했다. 세금을 받으러 왔느냐, 기부를 원하는 것이냐 등 반응이 냉담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갑작스런 산업사관 건립 취지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우림 관장은 “산업사관은 기업홍보관은 아니지만 울산시민들에게,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업의 협조를 부탁했다. 어느 순간, 기업들이 하나둘씩 마음을 열고 취지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역발전을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이에 울산시와 10개 울산 대표기업은 자료와 전시물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MOU를 체결하기에 이른다.

협약 체결 이후 기업의 협조는 적극적이었다. 각종 자료와 해당 산업에 대한 전문적 지식 제공 및 기술 자문을 해 주었고 전시실 구성을 위해 회의와 토론에도 기꺼이 함께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전시에 필요한 소품을 구하기 위해 해외까지 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로지 성공적으로 오픈하자는 목표 아래 똘똘 뭉친 결과 울산박물관 개관과 함께 산업사관 1, 2관이 무사히 오픈할 수 있었다. 기업의 재정적인 지원만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곳에 전시된 기업의 제품들은 업그레이드됨과 동시에 계속해서 교체전시가 가능하다. 울산박물관 산업사관은 국내 최고 산업사관이라는 점과 동시에 기업과 함께 꾸민 박물관으로 기록될 것이다.

건물 준공 후 6개월, 시민과 기업, 그리고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하나가 되어 꾸며진 울산박물관은 2011년 6월 22일 역사적인 개관의 팡파르를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울산 시민들의 박물관 사랑은 유별났다. 개관 후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관람객수 30만명을 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 기록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숫자인데다 예상했던 것보다 짧은 기간에 이뤄져서 모두를 기쁘게 했다.

 

이런 기특한 박물관을 봤나

 

울산박물관은 역사관, 산업사관, 어린이 체험관(해울이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관에는 ‘울산 역사의 켜, 문화의 힘’을 주제로 선사시대부터 1962년 울산공업지구 출범 이전까지 울산의 역사 문화를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 구성은 알고 싶은 울산, 울산의 선사문화, 국가의 성립, 고대의 울산, 고려시대 울산, 조선시대 울산, 근대 울산의 모습 등으로 이뤄졌다. 전시 유물은 총 1,500여점에 이른다.

산업사관은 1관과 2관으로 꾸며져 있다. 산업사관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유물을 통해 과거를 보여주고 모형을 통해 현재 산업에 관한 이해를 도우며 미래 산업 방향을 제시하여 무한한 울산산업의 발전을 염두에 두었다. 전시관 배치는 각 산업이 울산에서 시작된 순서로 배치되어 있으며 산업의 특징에 따라 단독 코너식으로 구성하였다. “여기가 아빠가 일하는 곳이야!”, “와우~ 아빠 이런 데서 일하고 있었구나!” 산업사관을 둘러보며 나누는 부자간의 이야기 속에는 산업사관 구성의 보람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해울이관은 울산광역시 캐릭터인 해울이(Haeuri)가 주인공이 되어 어린이 친구들과 함께 울산의 역사와 산업에 관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체험해 보는 어린이박물관이다.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한국의 산업 발전 과정과 함께해 온 산업수도 울산답게 해울이관 내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아이템들이 동원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울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형 일러스트 지도가 있으며 울산의 주요 지역을 확인할 수 있다. 곧이어 반구대암각화와 청동기, 신라시대 처용과 관련된 재미있는 영상을 만나게 된다. 또 자동차, 증류탑, 선박의 원리를 익히거나 금속의 세계를 연구하는 코너, 자동차와 배, 자전거 등을 직접 운전해 보면서 울산의 과거와 현재, 울산 산업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새롭게 거듭난 환경도시로서 친환경에 관한 내용 역시 많은 부분 반영하고 있다. 신생 박물관답게 가장 최첨단의 기술로 구성되어 있어 어른들에게도 남다른 재미가 가득하다.

울산박물관은 규모있는 전시관 구성과 함께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성인을 대상으로는 박물관대학(UMA), 전통문화 체험교실, 문화유적 답사, 도슨트(전시 해설사) 양성 교육과정이 있고 어린이 대상으로는 박물관 놀이교실, 어린이 1일 박물관 학교가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FUN FUN MUSEUM, 특수계층을 위한 문화 소외계층 어린이 프로그램, 교사 직무연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교사 직무연수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박물관을 즐기고 배우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 아래 지난 1월부터 시작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주제와 교과 과정을 연계한 박물관 교육 강좌를 포함하여 총 15강좌가 진행된다. 문화 프로그램으로는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울산시립예술단과 연계하여 Museum Saturday Concert를 진행하고 있다. 김우림 박물관장이 직접 사회를 보고, 매월 드레스 코드(추천의상색상)를 정하는 등 다른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작은 재미들도 알차게 준비하고 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친근한 음악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진행, 엄마가 아이와 함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토요 콘서트 덕분에 울산 시민들이 클래식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습니다. 예술 공연 대중화의 좋은 모범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관장님 목소리 짱!”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시민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토요콘서트는 울산시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매회 250여 명이 참여하는 토요콘서트의 인기는 회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역마다 박물관이 있다고는 하지만 중요한 유물은 국가유물로 관리되고 있어 시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물이 늘 부족하다. 큰 예산을 들여 보기좋게 건물을 지어놓고도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시민들에게 외면받는 박물관도 수두룩하다. 그런 의미에서 울산박물관이 이처럼 알찬 콘텐츠로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자체장 인기도 덩달아 상승

 

김우림 박물관장은 울산박물관 추진단장으로 취임하면서 ‘울산박물관 개관일정 로드맵 및 대곡·암각화 박물관 5개년 발전계획’을 마련했다. 이 때 울산박물관의 설립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박물관의 미션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S)를 정했다. 시민이 만드는 박물관, 울산의 기업이 참여하는 박물관, 시민에게 사랑받는 박물관”이다. 이후 ‘제1차 울산박물관 5개년 발전계획(2010.10)’, ‘제2차 울산박물관 5개년 발전계획(2011.10)’을 차례차례 수립하여 업무를 추진해 왔다. 2차 발전계획에서는 최고의 미션인 ‘시민에게 사랑받는 박물관’을 구현하기 위하여 하위 행동강령도 덧붙였다. “다양한 전시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 전시와 잘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진 평생교육기관, 시민이 편히 찾고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적인 고품격 서비스 기관”으로 정하고 세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박물관이 권위의 기관이 아닌 ‘서비스 기관’이라 명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구체적이면서 짜임새있는 로드맵 설정과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울산박물관이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 박맹우 울산시장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도 큰 몫을 담당했다. 박맹우 시장은 주간업무회의, 월간업무회의 등에도 박물관 얘기를 빼고 넘어간 적이 없을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시민들의 박물관 사랑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개관 1년이 지난 지금도 평일에는 6백~7백명이 찾아오고, 주말에는 천 오백명이 넘게 박물관을 찾고 있다. 울산박물관 강윤구 기획운영팀장은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던데 울산시민들의 박물관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없는 것 같다”며 울산시민들의 소감을 대변했다. 2013 계획 중인 ‘명청회화전’은 울산박물관 전시 후 서울에서도 전시될 예정이다. 서울보다 먼저 지역박물관이 전시를 개최하는 경우도 처음이라고 한다. 시민의 오래된 염원으로 만들어진 울산박물관이 울산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박물관이 되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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