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러 학자들 제주서 국제 콘퍼런스

역사·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국경을 넘어선 국가·지역 간 협력체 구성이나 경제 통합은 가능할까.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의 지역 전문가 200여명이 7~9일 제주 서귀포 신라호텔에서 `동북아 초국경 지역발전과 정책과제' 주제의 국제 콘퍼런스를 열어 동북아에서의 국경을 초월한 경제협력 및 지역발전 방안을 모색했다.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위원장 최상철)와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가 주최한 국제회의다.

이들 전문가는 한·중·일·러 4개국권, 환동해권, 환황해권, 한일해협권, 한국의 5+2 광역경제권과 일본의 8대 광역권 간 협력, 부산-후쿠오카권 등 다양하게 국가와 도시, 지역을 묶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각국 사이의 복잡다단한 역사, 영토, 명칭, 안보 문제 등이 걸림돌로 지적됐다.

◇어떤 방안이 제시됐나 = 참석자들은 동북아에서의 협력을 단계적이고 순차적으로 진행하려면 환황해권, 환동해권, 한일해협권 등 지역권을 설정해 민간과 지자체 간 교류를 지원하고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판쩐홍 중국 산둥성사회과학원 국제연구소장은 산둥과 한국의 자유무역지대 시범지역을 설립하자고 제안했고, 김은경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도 한국의 수도권과 중국 5개성이 참여하는 황해경제권(YSEZ)의 형성을 역설했다.

파벨 미나키르 러시아과학원 경제연구소장은 `아세안(ASEAN)+3(한·중·일)' 경제블록권의 등장을 전망했다.

한국의 5+2 광역경제권(광역경제권발전위원회)과 일본 8대 광역권(광역지방계획협의회)의 산업·물류·관광 부문을 연계하는 사업을 발굴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5+2 경제권은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대경권, 동남권, 강원권, 제주권이고 일본의 8대 광역권은 수도권, 중부권, 동북권, 킨기권(近畿圈), 규슈권, 호쿠리쿠권(北陸圈) 등이다.

이치카와 히로 메이지대 교수는 1994년 협력의정서가 체결된 서울, 베이징, 도쿄에 경제 중심지로 떠오른 상하이를 포함한 `베세토샤(BESETOSHA)'가 세계적 비즈니스·금융센터이자 고급 소비경제 중심지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무역·투자·금융·환경·교통 등의 분야에서 장관급 협의체는 다양하게 가동되고 있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협의체가 없어 `동북아 지역발전 정부 간 협력회의'(가칭)나 동북아지역발전협력기금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걸림돌은 무엇인가 = 길버트 로즈만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기조연설에서 동북아 초국경 협력지역을 8개로 구분해 장단점을 분석했다.

두만강 중심의 중-러-북 경제통합은 북한의 경제개혁 후퇴로 사실상 불가능하며 남북한-일본의 환동해권도 북한의 폐쇄정책으로 비전이 없고, 서울·인천과 베이징·톈진을 잇는 한-중 환황해권은 경제교류가 가장 활발하기는 하지만 중국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부산 중심의 동남권과 후쿠오카 중심의 규슈권, 즉 한-일 해협권은 통합지역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고 동북아 초국경 협력의 모델이 될 수 있지만 역사와 영토, 명칭 등 해묵은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첸상밍 트리니티대 교수도 중국 북부와 일본 남서부, 한국 서해안 지역을 아우르는 환황해권(PYSR, Pan-Yellow Sea Rim)의 통합을 전망하면서 각국의 주도권 문제와 아세안(ASEAN)과의 협력을 우선시하는 중국의 모호한 태도를 걸림돌로 꼽았다.

피터 림머 호주국립대 교수는 "동북아 통합은 물류가 핵심으로 한-일 터널이나 남북 육로 연결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카하 츠네오 몬터레이대 교수는 "북한 핵 문제와 북일 간 외교관계 부재 등이 다자 간 협력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도 지자체 간 역동적이고 쌍무적인 협력체제는 많지만 정규직 인력이 고용돼 있지 않고 공동 예산이 없으며 도시정부 권한이 제한돼 있다는 점 등이 넘어야 할 장애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