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로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대통령 직속 홍철 지역발전위원장을 만났다. 지난달 28일 지역발전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종로구 적선동 빌딩에서였다. 나이보다 일찍 세어버린 백발에서는 지역정책에 대한 그의 내공이 묻어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 경제비서관을 지내면서 지역정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해 국토개발연구원장, 국토정비기획단 자문위원,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고문 등을 거치면서 겪은 경험이 겹겹이 쌓여 지역정책 전문가 관록으로 피어났다.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장으로 취임할 때까지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과 고향이 같아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 어린 시선도 있었지만 100일간의 그의 활동 내역은 전문가로 평가받는 데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지역정책에 관한 자신감 때문일까. 홍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지역관이나 현 정부의 지역정책에 대해서도 주저없이 비판을 가했다.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지역사업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거 아닌가.
▶지역만 탓할 수도 없다. 반은 중앙정부 책임이다. 지역사업은 그 지역 스스로 우리는 이런 이런 특징이 있으니 이런 형태의 산업과 인프라 교육시설 등이 필요하다고 결정을 하고 그다음에 중앙정부하고 협의해서 지원받을 것은 받고 스스로 키울 것은 키우는 것이 ABC 중의 ABC다.
그런데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다 틀어쥐고 앉아서 지방 스스로 계획을 세울 기회도 안 준다. 중앙부처 국(局)도 아니고 과(課)에서 지역 하나 맡아서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으로 하니 지방이야 무조건 돈부터 따내고 보자는 식으로 덤비는 거지.
-중앙부처에 권한이 너무 집중돼 있다는 뜻인가.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이 더 큰 문제다. 그 지역에 뭐가 필요한지 고민해 보기라도 했나. 솔직히 시설 하나 해주겠다고 내놓을 때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자기 다칠까봐 여러 지역 입찰을 부친다. 나중에 탈이 나도 공개경쟁했다고 하면 자기는 안 다치니까. 그런데 교수들 불러서 평가하라고 해 놓고 또 뒤에서는 자기들이 컨트롤한다. 말이 좀 거칠지만 한마디로 중앙이 촌놈들 갖고 노는 거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나 신공항 같은 것도 그래서 문제가 된 건가.
▶그건 좀 다르다. 국책사업과 지역사업이 있다. 과학벨트는 국책사업이다. 이건 지역들 경쟁시켜서 할 문제가 아니다.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해서 최적의 입지를 선택하고 그에 맞게 추진하면 된다. 이번에 과학벨트 입지 선정한 것은 참 잘했다.
국책사업은 국가 전체의 종합계획에 따라서 하는 것이지 지역부터 먼저 염두에 두면 안 된다. 특정 지역 도와주려고 지역 먼저 정해놓고 그에 맞는 국책사업 찾으려니까 정치적으로 변질되는 거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개입하게 되고. 또 다른 지역 사람들은 반발하게 되고.
-신공항은 경제성이 없어서 못한다고 했는데.
▶호남고속철은 경제성이 없어도 국가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신공항하고 모순이지 않은가. 대통령도 정치인이라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신공항 안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니까 경제성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웠을 뿐이다.
지방이 먼저 잘못했다. 대구ㆍ경북하고 부산이 하도 첨예하게 싸우니까 어느 누구도 줄 수 없었다. 이제 와서 후회하는 목소리도 나오더라. 부산ㆍ대구ㆍ울산ㆍ경북ㆍ경남 5개 시ㆍ도 단합대회도 했다.
-동남권 신공항의 필요성은 어떻게 보는가.
▶어떤 성격의 공항이 필요한가를 먼저 결정했어야 한다. 내가 89년도 인천공항 구상할 때 참여해봐서 잘 안다. 우리나라에 허브공항은 인천공항 하나면 족하다. 그래야 상하이 푸둥공항이나 도쿄 나리타공항하고 경쟁을 할 수 있다.
영남권에 허브공항은 필요 없다. 지역거점 공항이면 된다. 그래서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정도까지 커버하면 된다. 일본, 중국에 가려고 인천까지 차 타고 갈 수는 없지 않나. 그 대신 미국, 유럽에 갈 때는 인천 가서 환승하면 된다.
-항공사가 취항을 안 하겠다고 했다.
▶비행기를 완행처럼 운행하면 된다. 뉴욕 런던 파리 인근에 보면 허브공항 옆에 지역거점공항이 여럿 있다. 우리로 보자면 뉴욕에서 인천 잠깐 들렀다가 지역공항으로 가면 되지 않나. 또 LCC(저가 항공사)를 육성하려면 지역거점공항이 있어야 한다. 인천공항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과점공항이다. 그래서 LCC가 안 되고 지방공항 운항 안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LCC가 잘된다. 중국도 오히려 LCC가 잘된다. 일본은 우리처럼 JAL하고 전일본공수 때문에 안 되고 있다.
-과학벨트, 신공항 말고 이제 지역갈등 소지가 있는 사업은 없나.
▶왜 없겠나. 큰 것은 없지만 작은 시ㆍ군 단위에서도 작은 것들은 많다. 그래서 연계ㆍ협력을 전제로 중앙정부가 지원을 하거나 연계ㆍ협력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해 나가려고 한다. 사실 그렇게라도 연계ㆍ협력을 종용하지 않으면 갈등사업은 해결 못한다. 시장이든 군수든 다들 주민의 표를 받아서 당선된 사람들이라 경쟁을 안 할 수 없으니 적어도 두세 개 지역이 협력할 때 인센티브를 주려고 한다.
-경제성이 있든 없든 무조건 가져가려고 하니 매칭펀드로 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매칭펀드로 한다는 게 어떤 사업을 하고자 할 때 해당 지자체도 비용을 부담하고 중앙정부도 일부 지원해서 하자는 것 아닌가.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자기 돈도 들어가니까 앞뒤 안 재고 무조건 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이것도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실 지방 재정이라는 게 그 지역에서 세금 받아서 공무원 월급 주고 나면 없다. 쓸 돈이 있어야 매칭펀드라도 할 것 아닌가. 중앙이 90% 부담하고 지방에는 10%만 부담하라고 해도 그 돈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수도권이라면 모를까. 나머지 지역은 해당 사항이 없다.
-낭비되는 지역사업도 많이 있던데.
▶물론이다. 지방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여전히 개발시대 사고를 갖고 있다. 임기 4년의 지자체장이 자기 임기 동안 뭔가 남겨 놓으려고 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보니 도로나 건물처럼 번듯하게 눈에 보이는 것만 찾는다. 소프트한 것은 너무 무관심하다. 광주에 아시아 문화의 전당을 짓고 있는데 건물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어떤 콘텐츠를 채울 것인가 하는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
-참여정부 때 결정한 공기업 이전이 본격화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생각은.
▶공기업 이전은 양면성이 있다. 공기업을 지방으로 옮겨놓으면 공기업 자체의 비효율은 생기기 마련이다. 대신에 지방 균형발전이라는 장점도 있다. 그 둘 중에 어느 것이 클지는 모르겠다. 참여정부는 지방 균형발전에 더 큰 가치를 뒀으니 추진했던 것 아니겠나.
-공기업 이전에는 문제가 없나.
▶참여정부가 지방 균형발전을 위해 좋은 결정을 했다. 그런데 혁신도시 아이디어는 실책이다. 촌 구석 허허벌판에 공기업 하나 옮겨놓으면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서울 사람들이 아무도 안 간다. 억지로 내려가서 구내식당에서 밥 먹고 주말만 되면 서울로 올라올 거다.
땅값만 올려놓았지 지역 발전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혁신도시로 할 게 아니라 기존 대도시에 들어갔어야 했다. 그래야 공기업 비효율도 줄이고, 그 지역에도 도움이 된다. 인구 분산 효과도 생기고. 그래도 어떡하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차근차근 지혜를 모아봐야지.
-이명박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할 텐데 남은 기간 어디에 역점을 둘 것인가.
▶이 정부 들어서 `5+2 광역경제권` 정책을 내놓았다. 비전을 잘 만들었다. 이것에 맞춰서 지역별 선도사업을 선정해 지원하고 그에 맞는 인재도 양성하고 인프라도 깔고 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이 피부로 못 느껴서 걱정이다. 홍보 전략만 갖고 안 되고 국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현 정부의 지역정책을 지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몫이다.
-이 대통령 임기 말까지 `5+2 광역경제권`이 완성될 수 있나.
▶못한다. 기본만 해놓고 다음 정권에 잘 넘겨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정책은 왔다갔다하면 안 된다. 정권 바뀌었다고 깡그리 무시하고 새로 그림 그리고 하면서 지역균형발전이 오늘날까지 온 것 아닌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하면서 했던 이후로 우리 지역정책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내 임무 중 중요한 것 하나가 이번 정부가 짜놓은 계획을 다음 정권이 계승해서 더 발전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현 정부 지역정책이 아주 좋다는 뜻인가.
▶광역경제권이라는 모델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주 좋다. 그런데 이걸 완성하는 접근 방식이 틀렸다. 대구와 경북을 뜻하는 대경권만 하더라도 대구권과 포항ㆍ경주권, 안동ㆍ영주권 3대 축이다.
이들 각각의 축을 어떻게 잘 살릴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하고 그다음에 3대 축을 서로 네트워킹만 하면 광역경제권이 저절로 완성된다. 말하자면 서브 권역부터 발전시켜서 광역권을 완성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 왔는가.
▶강원도를 예로 들어보자. 원주권은 의료산업을 키우고 있고 춘천권은 애니메이션과 바이오를 염두에 두고 있다. 강릉권은 누가 보더라도 관광산업이 우선이다.
이렇게 각각의 서브 권역이 자신의 특성을 살려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3개 권역을 강원도라는 하나의 광역경제권으로 보고 공통분모를 억지로 찾으려니까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
수도권을 봐라. 서울은 서울대로 잘하고, 인천은 인천대로 잘하고 이걸 연결시켜 놓으니까 또 시너지 효과가 나서 하나의 큰 경제권이 형성된 것 아닌가.
-지역 간 연계ㆍ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은 있나.
▶행정통합이 이뤄지면 쉽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필요에 의해서 밑바닥에서 움직일 수 있다. 남해안지역을 보면 광양 섬진강 등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9개 시ㆍ군이 남동권협의체를 만들어서 서로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정부에서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지역별 공간적 연계도 필요하지만 기능적 연계도 필요하다.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가 연계해서 특정 지역에 대해 적합한 산업과 인프라 그리고 인재를 보낼 수 있어야 최대의 시너지 효과가 난다.
■ He is…
1945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고를 나왔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국토개발연구원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다 84년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으로 발탁돼 91년까지 일했다. 건설교통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96년 건설교통부 차관보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97년부터 교통안전공단이사장과 국토개발연구원장, 인천대 총장 등을 지냈으며 중국 칭다오시 경제고문과 건교부 국토정비기획단 자문위원, 전국시도연구원협의회장,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고문, 대구경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2011년 3월 제2기 지역발전위원장으로 위촉돼 이명박 정부 지역정책을 펼치고 있다.
[출처: 매일경제 / 2011. 7. 4 / 이진명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419317